2019-03-06 “참회의 수요일”

[참회의 수요일: Ash Wednesday]

오늘은 교회력으로 “참회의 수요일”입니다. 오늘을 시작으로 교회는 “부활절” 전까지 “사순절”의 기간을 보냅니다. 교회가 사순절을 지키는 이유는, 그 시작을 알리는 “참회의 수요일”처럼, 우리의 구원을 위해 십자가의 죽임을 당하신 예수님의 고난을 기억하는 “참회(회개)”의 시간을 갖고자 함에 있습니다.

저는 신자가 죄를 반복하고 방자하게 사는 이유가 교회가 그리스도의 은혜를 너무나 값싸게 전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늘 ‘값싼 은혜’가 문제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생각해 보니, 은혜는 구원을 이루는 원천이기 때문에, 은혜를 말하지 않고 구원경륜을 이룰 수 없다는 것입니다. 사실, 은혜의 남용이 두려워 은혜를 말하지 않는 것은 은혜의 속성을 잘못 이해하는 것이고, 또 그 자체가 은혜와 모순됩니다. ‘필립 얀시’는 ‘루터’의 말을 인용하여, “남용할 만한 은혜라야 비로소 은혜”라고 말했습니다.

‘찰스 스펄전’도 은혜의 남용을 두려워한 나머지 은혜를 담대히 선포하지 못하는 자들을 향해, “은혜를 남용하는 자는 언제나 있어 왔으며, 은혜를 남용하는 자가 있다면 그 자신에게 책임이 있지 은혜를 자주 말하는 사람에게 있지 않다”면서, “물에 빠진 자에게 구명줄을 던져주었을 때 그것으로 목을 매는 사람이 있다면, 그것은 그 사람의 잘못이지 구명줄을 던져준 사람의 잘못이 아니다. 구명줄을 목줄로 남용할까봐(남용하는 자 때문에) 물에 빠진 자에게 구명줄을 던지지 않을 수 없다”고 말했습니다.

‘사순절’이 시작되는 날에, 은혜, 곧 그리스도께서 우리 각자에게 주신 은혜에 대해서 생각해 봅니다. 은혜를 더하게 하려고 더이상 죄를 지을 수는 없습니다(롬 6:1). 주신 은혜를 감사함으로 가슴에 간직하고, 오늘도 죄악과 싸우며 묵묵히 십자가의 길을 걸어가야 하겠습니다.

참회의 수요일 아침에 은혜와 평안을 빌며,

김 철 목사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