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주님의 이름으로 문안합니다. 지난 7월 4일 독립기념일을 시작으로 휴가와 출타가 잦은 요즘입니다. 여행 중에 행복하시고 안전한 여행 되시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달라”는 간구는 우리 죄 용서함을 받는 것이 우리가 다른 이의 죄를 용서한 것에 달려있는 것으로 오해하기 쉽습니다. 그러면 죄 사함이 더 이상 은혜가 아니라 엄청난 조건을 요구하는 율법의 행위가 되고, 복음을 송두리째 부인하는 셈이 되는 끔찍한 기도가 되고 맙니다. 그렇다면 이 간구의 진정한 의미가 무엇일까요?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에서 마태는 완료형 시제의 동사를 사용했습니다. 그러나, 일부 성경학자들은 주님이 제자들에게 아람어로 말씀하셨는데 이 아람어 동사가 완료적인 시제보다 동시적인 것을 뜻한다고 말합니다. 그러면 이 말씀은 “우리 죄를 사하여 주소서, 그와 동시에 우리도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겠습니다” 라는 뜻으로 읽을 수 있습니다. 이 말씀을 이런 뜻으로 읽는 것이 복음의 메시지와 부합합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하나님의 용서는 반드시 우리의 용서로 이어져야한다는 의미에서, 마치 우리의 용서가 하나님의 용서의 조건이 되는 것처럼 주님이 말씀하셨습니다는 점을 놓치지 말아야 합니다. 그래서 주님이 다시 반복해서 말씀하셨습니다. “너희가 사람의 잘못을 용서하면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도 너희 잘못을 용서하시려니와 너희가 사람의 잘못을 용서하지 아니하면 너희 아버지께서도 너희 잘못을 용서하지 아니하시리라”(마6:14-15). 우리가 다른 이를 용서하지 않으면서 우리 죄를 용서해달라고 기도하는 것은 큰 모순이고, 용서하지 않는 마음과 미움과 복수심을 그대로 품고 용서해달라는 기도는 거짓입니다. 그래서 칼빈은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사하소서 하는 간구는 달리 하면, 우리가 다른 이를 용서하지 않으면 우리도 용서하지 마소서 라고 기도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주어진 죄 사함의 은혜를 풍성히 누리는 사람만이 남을 용서합니다. 자신에게 죄지은 자를 용서하는 것은 하나님께 받은 용서의 흘러넘침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용서를 받은 이는 다른 이의 잘못을 용서하는 것이 당연하지만 우리의 부패성과 완악함 때문에 이런 열매가 자연스럽게 나타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우리에게 만달란트 빚 진자와 똑같은 모습이 재현될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비록 우리가 다른 이를 온전히 용서하지 못할 때도, 우리에게 죄 지은 이를 사한 것 같이 우리 죄를 사해달라고 기도할 수 있으며, 남을 용서하지 못하는 우리의 죄를 사해달라고 간구를 깃들여 이 기도를 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이번 주일, 은혜로운 예배에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오셔서 예배를 통해 하나님의 뜻을 구하고 찾고 두드리는 시간이 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먼저, 아침 10시에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21)” 공부가 있습니다. 같은 시간에 자녀들을 위해 있었던 “Sunday School”은 8월 둘째 주일까지 방학입니다. 오전 11시에는 김 철 목사가 “사도행전 22:1-21”을 본문 삼아, “바울의 간증”라는 제목으로 설교를 합니다. 예배를 마친 후에는, 애찬을 함께 나누는 ‘성도의 교제’가 있으니 많은 참여를 바랍니다.
끝으로, 주중에 모이는 수요모임(저녁 7:30)과 목장모임(목장별로)은 8월 첫째 주까지 쉽니다. 방학 중에도 말씀을 읽고 기도하는 경건생활에 힘쓰셔서, 주님의 복된 위로가 삶에 늘 넘치시기를 바랍니다.
주님 안에서, 사바나제일장로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