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5-09 부활절 6주 예배

우리 주님의 이름으로 문안합니다.

기독교는 ‘사랑의 종교’라고 말하고, 성경은 사랑을 다양한 방식으로 암시하고 보여주지만, 사랑을 중요한 주제로 삼아 직접 설명하고 강조하는 성경은 단연코 사도 요한의 ‘요한복음’과 ‘요한 서신들’입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시다”(요일 4:8, 16)는 명제는 단연 요한 신학의 핵심입니다. 사랑은 제자들(우리)이 만들어내는 무엇이 아니라,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것입니다. 예수님의 사랑도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것이며, 예수께서는 그 사랑을 제자들에게 주셨습니다. 하나님이 예수를 사랑하심으로 그 사랑은 예수에게 주어졌으며, 예수께서 제자들을 사랑함으로써 제자들에게 그 사랑이 주어집니다. 사랑을 받아들인 존재는 그 사랑 안에, 그리고 그 사랑을 준 존재와 함께 거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사랑을 받아들인 예수께서는 하나님(아버지) 안에 거하시고(요 14:10), 예수의 사랑을 받아들인 제자들은 예수 안에 거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계명을 지켜 그의 사랑 안에 거한다’는 말씀은 자칫 오해로 빠지기 쉽습니다.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 인간적 노력이 하나님의 사랑에 거하는 조건이라고 해석될 여지가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여기에서 말하는 ‘아버지(하나님)의 계명’은 법적 율법이 아니라, 사랑 자체가 그 계명입니다(12절). 하나님은 사랑하시고, 사랑이신 하나님의 계명은 사랑입니다. 포도 열매를 맺음으로써 포도나무에 거하게 되는 것이 아니라, 포도나무에 거함으로써 포도 열매를 맺습니다. 가지에 포도 열매가 열렸다는 사실은 그 가지가 포도나무에 거해 있다는 움직일 수 없는 증거 입니다. 열매 맺음은 계명을 지킴이며 곧 포도나무인 주님께 거함입니다. 사랑에 거함으로써 사랑의 열매를 맺게 되는 것입니다. 달리 말하면, 사랑에 거함으로써 사랑의 계명을 지키게 됩니다.

‘내 계명을 지키는 이가 나의 친구’라 예수께서 말씀하셨는데, 명령에 복종하는 동기는 두 가지로 설명될 수 있습니다. 하나는 두려움이고, 다른 하나는 사랑입니다. 요한에 의하면, 사랑의 반대는 미움이 아니라, 두려움 입니다(요일 4:18). 두려움 때문에 복종하는 사람은 ‘종’입니다. 이에 반해, 사랑에 따라 복종하는 사람은 ‘친구’ 입니다. 처벌을 두려워하여 마지못해 복종하는 종은 주인의 뜻을 이해함 없이 다만 명령에 따를 뿐입니다. 예수께서는 자신의 친구들인 제자들을 위해 목숨을 버리실 것이거니와, 제자들은 예수의 친구로서 예수의 명령을 지킬 것입니다. 곧 명령하는 이에 대한 사랑에 근거하여 사랑의 명령을 지키게 된다는 뜻입니다. 친구 간의 복종은 보상이나 대가를 원하지 않을 뿐더러, 두려움에 의한 것도 아닙니다. 명령하는 친구와 명령을 지키는 나의 뜻과 의지와 마음이 하나이기 때문에, 친구의 계명은 곧 나의 계명이고, 친구 계명을 지킴은 나의 계명을 완성하는 명예로운 일입니다. 따라서 복종 그 자체가 기쁨이요, 보상이며, 열매 입니다. 포도나무의 계명을 따라 열매를 맺는 가지에게 열매 맺음 그 자체가 기쁨이요 보상이듯이, 그리스도인들이 그리스도의 뜻에 합하여 사랑의 계명을 지키는 일 그렇습니다.

예배는 사랑하는 자를 향한 최대의 신앙적 표현이며 삶의 태도입니다. 우리(친구)를 위하여 자신의 목숨을 내어놓은 그 놀라운 사랑이 너무나 분명하고도 당연하게 우리를 예배의 자리로 이끌 것입니다. 우리를 두렵게 하는 모든 것으로부터 자유하고, 감사와 기쁨과 설레임으로 예배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저희 교회의 예배는 주일 아침 11시에 대면과 비대면(YouTube Live: Media SFKPC)으로 진행 됩니다. 예배에 대한 안내가 필요하시면 연락 주시기 바랍니다(church@fpckorean.org).

주님 안에서, 사바나제일장로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