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9-19 성령강림후 17주 예배

우리 주님의 이름으로 문안합니다.

저는 이번 주일, 예배의 부름은 ‘시편 1편’의 말씀입니다. 시편 1편은 시편 전체의 ‘서문’이라 할 수 있습니다. 율법을 늘 깊이 묵상하며, 삶의 문제를 고민했던 많은 시편의 시인들이 한결같이 강조하는 ‘복 있는 삶’은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삶’으로, 잠언의 표현으로 하자면 ‘지혜 있는 삶’이라 할 수 있습니다. 시편 1편을 예배의 부름 말씀으로 읽으며, 하나님 앞에 예배하는 여러분들과 가정에 하나님께서 주시는 ‘복’이 가득하시길 바랍니다.

‘복’을 말하면서, 우리는 주로 두 가지의 표현을 사용합니다. 하나는 ‘복 받는 삶’이고, 다른 하나는 ‘복 있는 삶’입니다. ‘복 받는 삶’도 좋지만, ‘복 있는 삶’이야말로 그리스도인들이 사모해야 할 삶의 모습이라 할 수 있습니다. ‘복 받는’이라는 표현이 아직은  이뤄지지 않는 미래형이라면, ‘있는’이란, 지금 소유하고 있는 현재형을 의미합니다. 이미 우리는 하나님께서 주시는 복을 누리며 살아가고 있다는 점에서 ‘복 있는’이라는 표현이 더 적합해 보입니다.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고 그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것, 그것은 그의 말씀에 젖어 사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러한 모습은, 일상의 삶 속에서 거룩한 말씀을 발견하고, 그 말씀대로 살아가기 위해 힘쓰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런 삶을 살아가는 이들은 시냇가에 심겨진 나무와 같은 삶을 살아가는 복을 누리는 것이고, 하나님이 인정해주시는 의인의 모습입니다. 늘 주님의 말씀을 주야로 묵상하며 살아가셔서 ‘복 있는 삶’을 살아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

시편 1편의 삶으로 우리를 부르시는 주님 앞에 감사함과 기쁨으로 나오시기를 바랍니다. 금주 예배는 주일 아침 11시에 ‘비대면으로’ 모입니다. 시간에 맞춰, 교회의 YouTube 채널인 ‘SFKPC’로 들어오시면 됩니다. 모임의 방식은 ‘비대면’이지만, 예배는 하나님을 ‘대면하는’ 시간입니다. 여러분의 삶의 자리를 예배의 자리로, 찬양과 감사의 자리로 만드시는 복된 은혜가 있기를 바랍니다.

주님 안에서, 사바나제일장로교회

2021-09-12 성령강림후 16주 예배

우리 주님의 이름으로 문안합니다.

교우 여러분, 전염병으로 인해 세상은 어수선하지만, 가을은 무심하게 깊어가고 있습니다. 지난 주에는 조지아의 가을을 알리는 노란 나비가 들판 위를 날아다니는 것을 보았는데, 자연만물은 이처럼 자연스럽게 시간의 변화를 알려주고 있습니다. 이름을 알지 못하는 가을꽃들도 여기저기 그 고운 빛깔을 뽐내며 자신의 존재를 통해 드러냅니다.  그 꽃들을 바라보다, 김춘수 시인의 유명한 시 <꽃>이 떠올랐습니다. 꼭 알아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 꽃들의 ‘이름’이 궁금했습니다. 관심이 있고 사랑한다면, 이름을 모를 수는 없습니다. 누군가를 사랑하게 되면, 모든 것이 궁금해지기 마련입니다. 좋아하는 것은 무엇인지, 가족관계는 어떤지….그러나 그 중에서 가장 기본적인 것은 ‘이름’입니다. 성경에서도 ‘이름’은 아주 중요한 의미를 갖고 있으며, 하나님께서 중요한 일을 맡기실 때에는 개명을 해주시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름을 알지 못하는 것들은 쉽게 잊혀지거나 무시 당하기가 쉽습니다.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모든 피조물들은 매우 소중한 존재입니다. 그래서, 돌멩이 하나, 들풀 하나 허투루 지으셨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모든 만물은 마치 퍼줄의 한 조각처럼 하나하나 다 의미가 있고, 하나라도 손상되거나 잃어버려서는 안 되는 것들입니다. 이처럼, 자연만물은 ‘존재의 의미’와 또 서로가 서로 연대하고 있다는 ‘더불어 살아감’에 대한 귀한 진리를 알려주고 있습니다. 코로나 팬데믹으로 오래 시간 서로 연락을 없어지면서 혹시라도 잊혀져가는 이름들을 없는지 돌아볼 일입니다.

광고 드립니다. 계속해서 이어지는 바이러스 확산세로 인해, 교회에서는 지난 두 주일에 이어서 9월 말(9/26)까지 대면 없이 ‘비대면으로만’ 예배를 하기로 하였습니다. 부디 건강을 잘 지키시기를 바랍니다.

예배는 주일 아침 11시에 YouTube Live(Media SFKPC) 로 스트리밍을 합니다. 가능하시면, 방해 받지 않을 조용한 장소를 찾아 시간을 지켜서 임해주시고, 무엇보다도 ‘기다림’과 ‘사모함’이 있는 예배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예배 가운데, 우리를 찾아와 부르시는(Call to Worship)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를 체험하는 시간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주님 안에서, 사바나제일장로교회

2021-09-05 성령강림후 15주 예배

우리 주님의 이름으로 문안합니다.

Covid-19 재확산으로 인해, 예배는 ‘비대면(온라인)’으로만 모입니다.

주일 아침 11시에 YouTube Live (SFKPC)로 뵙겠습니다.

다음 주일예배 안내는, 주중에 공지하도록 하겠습니다.

은혜 중에 평안하시기를 바랍니다.

주님 안에서, 사바나제일장로교회

2021-08-29 성령강림후 14주 예배

우리 주님의 은혜와 평안으로 문안합니다.

현재 미국은 변이된 코로나 바이러스의 재확산으로 말미암아 큰 어려움을 겪는 중입니다. 어려움을 이기기 위한 공동체의 노력과 수고도 있지만, 한편으로는 무지와 방종도 혼재되어 있어서 안타까움을 더하고 있습니다. 이런 때, 주님의 신실하심을 믿고 의지하며, 신앙인으로써, 또 신앙공동체로써 감당해야 할 시대적 사명을 묵묵히 짊어지며 나아가야 하겠습니다.

A. W. 토저는 “독특하게 산다는 것은 힘들다”며, “그래서, 세상의 가장 위대한 사람들 중 대부분은 외로웠다”고 말했습니다. 결국, 믿음으로 산다는 것은 세상과 다르게, 독특하게 산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고 외로움을 즐길 줄 알아야 한다는 것이며 오직 그리스도께만 진정한 위로가 인정이 있다는 것을 아는 삶일 것입니다. 우리는 주님을 위해서 어떤 선택을 해야 한다는 것을 삶의 경험을 통해서 잘 알고 있습니다. 어느 편에 서 있어야 하는가? 성경은 여러 이야기에서 편을 가르는 이야기를 합니다. 모세의 우상타파에서, 여호수아의 유언에서의 선택, 엘리야의 우상과 하나님과의 선택, 고린도 교회의 선택 등등. 옳은 편에 늘 서 있다는 것은 얼마나 힘든 일인지 모릅니다. 그러나, 신자는 하나님의 편에, 사랑과 은혜를 드러내는 헌신의 자리에, 공평과 정의를 세우는 자리에 서야만 합니다. 믿음으로 하는 일이 아니라면 중단해야 하고, 사랑을 이루는 일이 아니라면 거절해야 합니다. 그 자리가 바로 우리 주님께서 함께 하시는 자리이고, 역사하시는 순간이기 때문입니다.

우리 주님을 예배하는 자리에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금주와 다음 주일(9/5)은 ‘비대면’으로만 모여 예배합니다. 예배는 교회의 YouTube 채널인 SFKPC 를 통해 라이브로 진행 됩니다. 함께 모여, 우리 주님을 경배하며 주시는 은혜를 누리는 자리가 되기를 바랍니다.

주님 안에서, 사바나제일장로교회

2021-08-22 성령강림후 13주 예배

우리 주님의 은혜와 평안으로 문안합니다.

금주의 말씀을 준비하면서, 떠오른 찬송가는 490장 <주여 지난 밤 내 꿈에>입니다. 이번 주일 본문(요 6:60-71)은, ‘오병이어’의 기적을 베푸신 예수님께서 하신 긴 강론의 끝부분(결론)에 해당하는 부분입니다. 예수님께서 베푸신 기적들 중에서 단번에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참여한 기적은 오병이어가 단연 최고일 것입니다. 이 일로 인해 정말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 앞으로 몰려 들었습니다. 그러나, 그 기적(표적)의 의미를 설명하시는 예수님의 말씀(강론)을 들으면서, 많은 이들이 수군거리고 불평하고 결국 떠나게 됩니다. 결국 제자들 중에서도 많은 제자들이 떠나고 ‘열두 명’만 남게 됩니다. 예수님이 그들에게 묻습니다. “너희도 가려느냐?”(67절) 그러자 열두 제자를 대표하여 시몬 베드로가 답합니다. “주여 영생의 말씀이 주께 있사오니 우리가 누구에게로 가오리이까?”(68절) 예수님은 이들을 “아버지께서 내게 주신 자들”이라고 하십니다(65절).

오병이어를 통해서, 열두 제자들이 ‘영생의 말씀’에 대한 관심과 깨달음을 갖게 된 것은 사실 오병이어의 기적 못지 않은 기적입니다. 그들이 떠난 다른 이들과 다르게 특별한 영적인 감적이 있었기 때문이 아닙니다. 그들의 안타까운 모습을 보면서, 찬송가의 시인처럼, “밤과 아침에 계시로 보여주사 항상 은혜를 주옵소서”라는 기도가 우리에게 얼마나 절실한가를 깨닫게 됩니다. 우리도 주님을 떠난 그들과 별반 다르지 않기 때문입니다. 우리도 그저 육신에 만족을 주는 빵에 흥분하는 이들입니다. 빵에 담긴 의미와 그 빵을 허락하시는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을 깨닫기에는 너무나 무지하고 연약합니다. 살리는 영의 역사를 깨닫기 위해 늘 성령님의 인도하심이 절실합니다.

주일예배에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예배는 주일 아침 11시에 대면(예배실)과 비대면으로(YouTube Live: SFKPC) 진행됩니다. 허락된 소수만 모이게 되는 안타까움이 늘 있지만, 좋은 밭에 뿌려진 소수의 씨가 결국 온 밀가루를 부풀리게 하는 누룩처럼, 또 많은 새들이 깃들여 쉼을 얻게 하는 겨자나무처럼, 풍성하고 복된 열매를 많이 맺는 역사를 이룸을 믿습니다. 주님이 기뻐하시는 그 소수, 주님의 하늘 나라 역사에 참여하는 그 소수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주님 안에서, 사바나제일장로교회

2021-08-15 성령강림후 12주 예배

우리 주님의 은혜와 평안으로 문안합니다.

코로나 변이 바이러스의 전파속도가 상당히 매섭습니다. 연일 작년 못지 않은 확진자 증가추세가 걱정스럽기만 합니다. 언제까지 이럴까 하는 불확실 속에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가져야 할 분명한 삶의 자세는 “이 모든 상황을 하나님께서 분명히 섭리하신다”는 사실 입니다. 우리에게는 통제불능해 보이는 상황이지만, 이 혼란함 조차도 하나님의 분명하신 섭리 아래 있다고 확신 합니다. 그래서 이러한 때에 정말 중요한 것은 그 하나님에 대한 분명한 신뢰와 믿음을 갖는 것입니다.

우리는 오랜 시간, 1년 반 가까이, ‘비대면 예배’를 해왔습니다. 교회적으로 볼 때, 백신 접종이 대부분 이루어지고, 대면예배에 재게되었음에도 불구하여 여전히 많은 분들이 대면예배 참석에 상당한 부담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얼굴을 대하지 못하고 예배 드리지만,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하는 모든 곳에서 영광 받으시는 “하나님과는 대면하며” 예배를 드리고 있다는 것은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교회에서 함께 드리지 못하는 예배를 구분하기 위해서 ‘비대면 예배’라는 말을 사용하는 것이지, 사실 “모든 예배는 하나님의 얼굴을 뵙는, 대면예배입니다”.

복된 예배의 자리에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예배는 주일 아침 11시에 시작하며, 대면(예배실)과 비대면으로(YouTube Live: SFKPC) 참여하실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대제사장 아론을 통해서 주신 축복의 말씀처럼, “하나님께서 그 얼굴을 우리에게 비추사 은혜 베풀어 주시고, 평강 주시기를”(민 6:25-26) 간절히 소망합니다.

주님 안에서, 사바나제일장로교회

2020-08-08 성령강림후 11주 예배

우리 주님의 이름으로 문안합니다. 은혜와 평안이 함께하시기를 바랍니다.

‘양식’은 모든 생명이 생존을 위해 꼭 먹어야 합니다. 그래서 사람은 양식을 얻기 위하여 일을 합니다. 일과 노동을 통해 양식을 벌어들입니다. 광야생활 40년 동안에도, 내렸던 만나를 얻기 위해 수고를 하여야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수고해서 값비싼 양식을 먹었다고해서 영원히 배고픔이 사라지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이 일해서 소유하게 된 어떤 양식도 없어지게 마련이고, 또 그 양식을 위해 수고하는 사람도 결국에는 소멸하게 됩니다. 양식을 위해 일하는 사람도, 그가 벌어들인 양식도 없어지게 되니, 결국은 그 양식은 ‘썩을 양식’입니다(요 6:27). 그런데, 요한복음 6장을 보면, 사람이 일하여 얻는 양식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시는 양식’이 있다고 말씀합니다. 이 양식은 수고의 대가가 아니라, 사랑으로 주어집니다. 일꾼에게 주는 양식이 아니라, 자녀에게 주는 양식입니다. 대가 없이 은혜로 주어지는 양식은 ‘주는 이’와 ‘받는 이’ 사이를 생명의 관계로 이어주기에, ‘생명의 양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양식의 원천인 하나님은 영원하신 분이시기에, 이 양식은 중단없이 언제까지나 공급됩니다. 그런 의미에서, ‘영원하도록 있는 양식’ 입니다.

‘오병이어’의 기적을 체험한 이들이 “썩을 양식을 위하여 일하지 말고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을 위하여 하라”(27절)는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우리가 어떻게 하여야 하나님의 일을 하오리이까?” 묻습니다. ‘내가 무엇을 해야 영생을 얻을 수 있습니까?’라는 의미입니다(마 19:16, 막 10:17, 눅 10:25, 18:18). 여기서 ‘하나님의 일’이란 ‘하나님이 원하시는 일’이라는 의미인데, 그들은 하나님이 원하시는 일을 하겠다는 것입니다. 이런 열의에는, 내가 하나님이 원하시는 일을 행하여 그분을 기쁘시게 하면 하나님도 나의 원하는 것을 보상으로 주신다는 믿음을 바탕으로 합니다. 하나님의 일을 한 대가로 내가 원하는 양식을 얻겠다는 생각입니다. 하지만, 예수께서 하시는 말씀에서 ‘하나님의 일’은 ‘하나님이 하시는 일’입니다. 가족을 부양하는 일이 아버지의 일인 것처럼, 세상에 양식을 공급하는 것은 모든 생명의 아버지이신 하나님 자신의 고유한 일입니다. 아버지가 양식을 얻는 조건이나 대가를 자녀에게 요구하지 않는 것처럼, 하나님은 모든 생명에게 양식을 주시는 일을 성실하고 온전하게 행하십니다. 우리가 하나님이 원하시는 일을 해야 하나님으로부터 양식을 얻을 수 있다는 생각은, 아버지이신 하나님의 사랑과 온전하심을 신뢰하지 못함에 기인한 착오 입니다. 자녀인 우리가 할 일은, 하나님의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다만 아버지이신 하나님을 믿는 것입니다(29절).

사랑하는 여러분, 예배의 자리로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예배는 하나님의 양식인 말씀을 먹는 ‘성례전’입니다. 예배를 통해 하늘 양식으로 배부름(충만함)을 경험하시기를 바랍니다. 예배는 주일 아침 11시부터 대면과 비대면으로(YouTube Live: SFKPC) 진행됩니다. 그리고, 최근 코로나 확산으로 인해, 예배 시 ‘마크스 착용’을 필수로 하였습니다. 모두 은혜 중에 평안하시기를 바랍니다.

주님 안에서, 사바나제일장로교회

2021-08-01 성령강림후 10주 예배

우리 주님의 은혜와 평안으로 문안합니다.

8월 첫째 주일입니다. 인디언들은 이 8월을 ‘열매가 햇살을 저장하는 달’이라고 합니다. 여러분의 마음에 빛되신 그리스도를 한껏 저장하고 살아가시길 바랍니다.

사무엘하 11장을 보면, 밧세바 문제로 범죄한 다윗을 선지자 나단이 방문하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다윗을 찾아간 나단은 “주님께서 보시기에, 다윗이 한 이번 일은 아주 악하였다”(삼하 11:27)고 말합니다. 그리고 이어서 ‘저주의 예언’을 합니다. 그런데, 그 이야기를 듣고 다윗이 이렇게 자백합니다. “내가 주님께 죄를 지었습니다.” 다윗의 위대함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다윗의 인간적인 매력도 여기에서 발견합니다. 부족해서 언제든지 죄에 빠질 수 있는 한계를 가진 인간이지만, 죄인임을 깨달았을 때, 변명하거나 은폐하지 않고 회개하는 용기가 희망의 근거 입니다. 하나님께서 다윗을 붙잡아 주신 이유는 여기에 있습니다. 우리도 하나님께서 회복시켜 주시기를 원한다면, “죄를 깨닫고 주님께로 돌이켜야 합니다”. 죄의 지적과 깨달음이 있을 때, 얼마나 많은 이들이 과연 그 죄에 대해 인정하고 그에 대해 올바른 처신을 할까요? 죄를 회개하기는커녕 합리화하면서 살아가려고하는 것이 우리의 모습이 아닐까요? 한 가정이, 교회가, 나라가 변하려면 “내가 주님께 죄를 지었습니다!” 하고 회개하는 이들이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보십시오. 우리 사회와 교회가 ‘내가’가 아니라, ‘네가’ 라고 하고 있습니다. ‘내로남불’이라고 다 남의 탓입니다. 이런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교회의 지도자가 되면 그 교회는 불행해지고, 이런 사람들이 나라의 지도자가 되면 나라가 불행해지고, 세계의 지도자가 되면 세계가 불행해지는 것입니다. “내가 주님께 죄를 지었습니다!” 이런 마음을 가진 사람들이 많아져야, 교회도 나라도 세계도 희망이 있습니다. 죄의식에 빠져 살라는 이야기가 아니라, 죄를 인식해야 살아야 한다는 말입니다.

성령강림후 열째 주일 예배에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예배는 주일 아침 11시에 대면(예배실)과 비대면(YouTube Live: Media SFKPC)으로 동시에 진행 됩니다. 예배를 통해, 참된 회개와 그로 인한 복된 회복의 역사가 일어나기를 소망합니다.

주님 안에서, 사바나제일장로교회

2021-07-25 성령강림후 9주 예배

우리 주님의 은혜와 평안으로 문안합니다.

성령강림후 8주인 이번 주일에 살펴볼 말씀들 중에 ‘에베소서 3장’의 말씀이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무릎을 꿇고 하나님께 기도 합니다(14). 그 하나님은 “하늘과 땅에 있는 각 족속에게 이름을 붙여 주신 분(14,15)”이십니다. 이름을 붙여준다는 것은, ‘친밀한 관계를 맺는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곧, ‘이제 너와 나는 특별한 관계가 되었다’는 뜻입니다. 부모가 자녀의 이름을 지어주는데, 그 의미는 ‘장성한 어른이 되기까지 너를 책임지겠다’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창세기 2장 19-20절’을 보면, 하나님께서 아담이 창조하신 것에 무엇이라 이름을 붙여주는가 보십니다. 아담이 각 생물을 부르는 것이 이름이 되었습니다(창 2:19b). 이렇게 아담에게 이름을 붙이게 하심으로,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창조세계를 관리하고 지킬 청지기적인 사명을 그에게 주신 것입니다. 즉, 아담을 창조의 동역자로 삼아주신 것입니다. 이렇듯 이름을 붙이는 행위는 상당히 중요한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시인 김춘수 님도 <꽃>이라는 시에서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고 노래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그리스도인’이라는 이름을 붙여 주셨습니다. 왜, 하나님께서 이 이름을 붙여주셨을까요? 먼저, 우리와 친밀한 관계를 맺으시고, 우리와 특별한 관계가 되셔서, 우리를 책임져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이사야 43장 1절’에 “너는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고,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 하시는 말씀을 기억하십시오. 그러니,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겠습니까? 이름값을 하면서 살아야 합니다. 이름만 그리스도인이 아니라, 내가 그리스도인이기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욕되는 것이 아니라 빛나는 삶을 살아야 이름값하며 살아가는 것이 됩니다. 우리에게 ‘그리스도인’이라는 이름을 붙여주신 하나님 아버지를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살아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바라겠습니다.

여러분을 주일예배에 초대합니다. 예배시간은 주일 아침 11시며, 대면과 비대면(YouTube Live: SFKPC)으로 참여하실 수 있습니다. 이번 주일은 김철 목사 출타로, Army Chaplain 으로 사역 중인 이재우 목사가 예배를 인도합니다. 오셔서 큰 은혜 누리시기를 바랍니다.

주님 안에서, 사바나제일장로교회

2021-07-18 성령강림후 8주 예배

우리 주님의 은혜와 평안이 함께하시기를 바랍니다.

피아노를 조율하는 일에 있어서 세계적인 피아니스트들로 찬사를 받은 분이 계십니다. 60년 넘는 세월을 피아노 조율을 하신 서울 예술의전당 수석조율사이신 이종열 님입니다. 이 분이 <조율의 시간>이라는 제목의 에세이를 쓰셨습니다. 글 중에, “가지런히 놓인 흰 건반과 검은 건반 88개. 타악기인 피아노는 손가락으로 건반을 누르면, 해머가 현을 때려 소리를 낸다. 이 양모 해머를 미세하게 손질함에 따라 기계 장치인 피아노는 영혼이 담긴 소리를 내는 악기가 된다. 아무리 좋은 피아노라도 조율을 잘 하지 못하면 거칠고 둔한 소리를 낸다. 조율이란 아름다운 피아노 소리를 만들어가는 일. 아름다운 수리에 힘이 갖추어지면, 조율사가 감동하고 다음으로 연주자가 감동하고 끝으로 청중이 감동한다.”는 내용이 나옵니다. 조율은 ‘서로 타협하여 음을 결정하는 방법’ 입니다. 조율뿐만 아니라 연주도 타협이라고 할 수 있는데, 혼자만 큰소리를 지르면 음악의 균형이 깨지게 됩니다. 인생도, 신앙도 역시 마찬가지 입니다. 잘 조율된 피아노가 아름다운 소리를 내는 것처럼, 아름다운 인생이 되기 위해서도 ‘삶의 조율’이 필요합니다. 균형을 잃지 않은 배가 좌초되지 않고 오래 순항할 수 있는 것처럼, 복잡하고 분주한 현대인의 일상에서 필요한 균형감은 바로 ‘쉼'(휴식, 안식)을 어떻게 갖느냐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쉼’이란, 맹목적으로 몸의 긴장감을 푸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인간의 유한성을 인정하며, 하나님을 바라보기 위한 목적의, 하나님과의 소통을 위한 휴식이어야 합니다. 주님은 늘 우리의 필요를 아시고,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마 11:28) 말씀하십니다. 주님은 우리를 쉬게 해 주십니다. 주님의 보살핌 안에서의 쉼이 우리에게는 절실합니다. 주님의 품에 안겨서 우리의 지치고 상한 마음을 치유받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의 손으로 조율 받는 악기가 되어야, 자신의 삶은 물론 뭇사람들의 심금을 울리는 아름다운 삶이 될 수 있습니다.

성령강림후 8주 예배, 영혼에 참된 쉼(안식)이 있는 예배에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오셔서, 하나님의 손길로 조율을 받으시길 바랍니다. 60년 경력의 조율사가 아니라, 우리를 창조하신 분의 조율을 받아보세요. 왜 우리의 삶에 ‘아름다움’이 사라졌는데, 어떻게 그 아름다움이 회복되는 지를 경험해 보시기를 바랍니다. 예배는 약속된 주일 아침 11시에 시작될 것입니다. 대면과 비대면으로(YouTube Live: Media SFKPC) 만나겠습니다.

주님 안에서, 사바나제일장로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