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5-16 부활절 7주 예배

우리 주님의 은혜와 평안으로 문안합니다.

오늘은 교회력으로, 부활절 마지막 주일(7주)입니다. 이제, 다음 주일이면 우리는 ‘성령강림절’을 맞이하게 됩니다. ‘부활’은 기독교 신앙의 핵심이고, 교회의 본질입니다. 이 말은, 신앙하는 모든 일이 ‘부활’에서 비롯한다는 뜻이고, 달리 말하면 ‘부활’과 관련 없는 것은 신앙과 무관하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오늘 우리에게 ‘부활’은 예수 그리스도에게 일어났던 놀라운 사건이나, 성탄절이나 사순절과 같은 교회의 절기 가운데 하나라는 의미를 넘어서지 못하고 있습니다. 죽은 사람이 다시 살아난다는 것이 실감이 나지도 않을 뿐더러, 오늘의 내 삶과는 무관한 ‘신화’처럼 여기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인지 예수의 ‘부활’이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는 어떤 의미가 있다는 것인지, 그리고 대체 우리는 어떻게 부활의 증인으로 살아낼 수 있다는 것인지 질문하려 하지 않습니다. 사도행전을 보면, 새로이 사도를 선출하는 교회의 모습이 소개되어 있습니다. 본래 주님이 세우셨던 사도는 열둘이었으나 가룟 사람 유다가 예수를 배반하고 목숨을 끊은 이후, 그 자리가 계속 비어 있었습니다. 부활 사건을 경험한 이후 다시 결속하기 시작했던 교회 공동체가 처음 한 일이 바로 비어있는 사도의 자리를 채우는 것이었습니다. 이 과정을 들여다보면서 우리가 주목해야할 부분은 ‘사도’가 될 수 있는 조건, 다시 말해 무엇을 하는 이가 사도일 수 있는가라는 정의입니다.

항상 우리와 함께 다니던 사람 중에 하나를 세워 우리와 더불어 예수께서 부활하심을 증언할 사람이 되게 하여야 하리라” (행 1:22)

초기 기독교 공동체가 유일하게 사도의 조건으로 삼은 것, 그러니까 사도의 사명은 ‘주의 부활을 증언’하는 것이었습니다. ‘사도’는 곧 ‘부활의 증인(목격자)’이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는 ‘사도적 신앙’을 계승하고 있는 오늘의 교회가 왜 존재해야 하고, 또 무엇을 힘써야 하는지 그 사명에 대해서 너무도 분명한 메시지를 전해 줍니다. 여기서, 한 가지 더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은, ‘부활을 전하는 사람’으로 무엇을 어떻게 해야하는가 입니다. 큰 거리로 나가 큰 소리로 ‘예수께서 부활하셨다’는 것을 외치는 것을 말할까요? 아니면 로마 황제앞에서 복음을 외치다 장렬하게 순교를 해야하는 것일까요?

부활의 주님을 예배하는 영광스럽고 복된 자리에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대면예배를 희망하시는 분은 매주 금요일까지 교회로 알려주시고, 비대면으로 예배하기를 원하시는 분은 교회 YouTube 채널인 “Media SFKPC”를 이용해 주시기 바랍니다. 예배시간은 매 주일 아침 11시 입니다.

주님 안에서, 사바나제일장로교회

2021-05-09 부활절 6주 예배

우리 주님의 이름으로 문안합니다.

기독교는 ‘사랑의 종교’라고 말하고, 성경은 사랑을 다양한 방식으로 암시하고 보여주지만, 사랑을 중요한 주제로 삼아 직접 설명하고 강조하는 성경은 단연코 사도 요한의 ‘요한복음’과 ‘요한 서신들’입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시다”(요일 4:8, 16)는 명제는 단연 요한 신학의 핵심입니다. 사랑은 제자들(우리)이 만들어내는 무엇이 아니라,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것입니다. 예수님의 사랑도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것이며, 예수께서는 그 사랑을 제자들에게 주셨습니다. 하나님이 예수를 사랑하심으로 그 사랑은 예수에게 주어졌으며, 예수께서 제자들을 사랑함으로써 제자들에게 그 사랑이 주어집니다. 사랑을 받아들인 존재는 그 사랑 안에, 그리고 그 사랑을 준 존재와 함께 거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사랑을 받아들인 예수께서는 하나님(아버지) 안에 거하시고(요 14:10), 예수의 사랑을 받아들인 제자들은 예수 안에 거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계명을 지켜 그의 사랑 안에 거한다’는 말씀은 자칫 오해로 빠지기 쉽습니다.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 인간적 노력이 하나님의 사랑에 거하는 조건이라고 해석될 여지가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여기에서 말하는 ‘아버지(하나님)의 계명’은 법적 율법이 아니라, 사랑 자체가 그 계명입니다(12절). 하나님은 사랑하시고, 사랑이신 하나님의 계명은 사랑입니다. 포도 열매를 맺음으로써 포도나무에 거하게 되는 것이 아니라, 포도나무에 거함으로써 포도 열매를 맺습니다. 가지에 포도 열매가 열렸다는 사실은 그 가지가 포도나무에 거해 있다는 움직일 수 없는 증거 입니다. 열매 맺음은 계명을 지킴이며 곧 포도나무인 주님께 거함입니다. 사랑에 거함으로써 사랑의 열매를 맺게 되는 것입니다. 달리 말하면, 사랑에 거함으로써 사랑의 계명을 지키게 됩니다.

‘내 계명을 지키는 이가 나의 친구’라 예수께서 말씀하셨는데, 명령에 복종하는 동기는 두 가지로 설명될 수 있습니다. 하나는 두려움이고, 다른 하나는 사랑입니다. 요한에 의하면, 사랑의 반대는 미움이 아니라, 두려움 입니다(요일 4:18). 두려움 때문에 복종하는 사람은 ‘종’입니다. 이에 반해, 사랑에 따라 복종하는 사람은 ‘친구’ 입니다. 처벌을 두려워하여 마지못해 복종하는 종은 주인의 뜻을 이해함 없이 다만 명령에 따를 뿐입니다. 예수께서는 자신의 친구들인 제자들을 위해 목숨을 버리실 것이거니와, 제자들은 예수의 친구로서 예수의 명령을 지킬 것입니다. 곧 명령하는 이에 대한 사랑에 근거하여 사랑의 명령을 지키게 된다는 뜻입니다. 친구 간의 복종은 보상이나 대가를 원하지 않을 뿐더러, 두려움에 의한 것도 아닙니다. 명령하는 친구와 명령을 지키는 나의 뜻과 의지와 마음이 하나이기 때문에, 친구의 계명은 곧 나의 계명이고, 친구 계명을 지킴은 나의 계명을 완성하는 명예로운 일입니다. 따라서 복종 그 자체가 기쁨이요, 보상이며, 열매 입니다. 포도나무의 계명을 따라 열매를 맺는 가지에게 열매 맺음 그 자체가 기쁨이요 보상이듯이, 그리스도인들이 그리스도의 뜻에 합하여 사랑의 계명을 지키는 일 그렇습니다.

예배는 사랑하는 자를 향한 최대의 신앙적 표현이며 삶의 태도입니다. 우리(친구)를 위하여 자신의 목숨을 내어놓은 그 놀라운 사랑이 너무나 분명하고도 당연하게 우리를 예배의 자리로 이끌 것입니다. 우리를 두렵게 하는 모든 것으로부터 자유하고, 감사와 기쁨과 설레임으로 예배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저희 교회의 예배는 주일 아침 11시에 대면과 비대면(YouTube Live: Media SFKPC)으로 진행 됩니다. 예배에 대한 안내가 필요하시면 연락 주시기 바랍니다(church@fpckorean.org).

주님 안에서, 사바나제일장로교회

2021-05-02 부활절 5주 예배

우리 주님의 은혜와 평안으로 문안합니다.

미국에서 아이들을 키우며 느끼는 것은 ‘상이 참 많다’는 것입니다. 어떠한 교육적 목적이 있겠지만, 개인적으로는 별로 동의가 되지 않습니다. ‘상’이 끊임없이 ‘경쟁’을 부추기기 때문입니다. 이번에 오스카 여우조연상을 받은 윤여정 씨가 “우리는 각자 다른 영화에서 다른 역할을 맡았다. 그래서 우리는 서로 경쟁할 수 없다. 우리 모두가 승리자/수상자 다”는 수상소감을 했는데, 참 많이 와 닿았습니다. 성공과 실패로 가름되는 경쟁이 아니라, 내 인생에 부여된 ‘역할’ 곧 ‘소명’을 새롭게 하는 일이 인생에서 무엇보다도 중요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각자 맡은 은사와 달란트 대로 충성하는 일이 우선 가져야 할 관심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성공과 실패를 말하기에는 너무 이른 시간 입니다. ‘부르심의 상’을 위하여 묵묵히 순례의 길을 걸어야 하겠습니다. 허탄한 생각을 버리고, 허탄한 자랑을 경계해야 하겠습니다.

예배의 유익 중 하나는, 소명을 새롭게 한다는 것입니다. 예배자로 함께 나아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주일 아침 11시에 ‘대면’과 ‘비대면'(Media SFKPC)으로 함께 예배합니다.

주님 안에서, 사바나제일장로교회

2021-04-25 부활절 4주 예배

우리 주님의 은혜와 평안으로 문안합니다.

다윗은 왕으로서 백성들의 목자 역할을 하였지만, 스스로 너무나 부족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목자가 아닌 양이 되어 목자 되시는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고보니 너무나 좋았습니다. 부족함이 전혀 없었습니다. 그만큼 다윗에게 하나님의 인도하심은 완벽했습니다. 시편 23편의 모습을 머리 속으로 그려보면, ‘항상’ ‘함께하시는’ 목자의 모습이 그려집니다. 감리교의 창시자인 ‘존 웨슬리’가 임종하면서 남긴 유명한 말이 있습니다. “가장 좋은 것은 임마누엘이다.” 그러니까 “가장 좋은 것은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는 것이다” 라는 말입니다. 경건한 신앙인으로서 하나님의 말씀을 붙들고 평생을 살았던 거장이 남긴 유언은 간단하지만 큰 울림이 있습니다.

부활절 넷째 주일은 ‘선한 목자 주일’이라는 별칭이 붙곤 합니다. ‘삯꾼’인 ‘거짓 목자’와 대비되는 ‘선한 목자’를 소개하는 요한복음 10장이 본문으로 주어지는 날입니다. 선한 목자는 자기 양을 위하여 목숨을 버린다고 합니다. 주님은 그 말씀을 실제로 실천하셨습니다. 그리고 부활하셨습니다. 부활을 기념하는 절기를 보내는 요즘, 선한 목자에 대한 말씀을 묵상하는 것이 유의미한 이유입니다. 이번 주일은 그 속뜻에 대해서 깊이 묵상해보고, 선하신 목자를 이야기하시는 주님의 음성에 귀를 기울여보는 시간을 갖고자 합니다.

이번 주일예배에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아침 11시에 대면과 비대면으로 참석하실 수 있습니다. 비대면 참석을 희망하시는 분은 시간에 맞춰 교회 YouTube 채널인 “Media SFKPC”로 들어오시면 됩니다. 예배 가운데 큰 은혜가 있으시기를 바랍니다.

주님 안에서, 사바나제일장로교회

2021-04-18 부활절 3주 예배

우리 주님의 은혜와 평안이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교회는 ‘주님의 부활’을 경축하는 ‘부활절 절기’를 보내고 있습니다. 지난 해에 이어 올해도 C-19 팬데믹 마음껏 축하하며 시간을 보내지 못했지만, 부활에 대한 소망만큼은 그 어느 때보다도 절실한 마음입니다. ‘부활주일’부터 ‘승천주일’까지의 기간, 7주간을, 교회는 부활절 축제의 절기로 보냅니다. 또한 주님께서 부활하신 안식 후 첫날, 일요일에 기독교는 주님의 부활을 기념하며 예배를 드려왔습니다. 매주일을 ‘작은 부활절’로 지켜왔다는 의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은 사도들이 전한 케리그마의 핵심이고, 또한 교회 공동체가 갖는 정체성을 특징이기도 합니다. 바울의 고백처럼, 그리스도의 부활이 없다면 정말 우리는 ‘아무것도 아닌’ 존재들이 되고 맙니다. 부활신앙으로 살아간다는 의미를 되새기는 일은 주일마다 반복해도 모자랄 때가 있습니다.

부활의 주님을 예배하는 주일 예배에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주일 아침 11시에 대면과 비대면으로 예배합니다. 대면예배는 희망하시는 분은 매주 금요일까지 연락을 주시기 바랍니다(church@fpckorean.org). 비대면예배는 YouTube Live(Media SFKPC)로 참여해 주시면 됩니다.

주님 안에서, 사바나제일장로교회

2021-04-11 부활절 2주 예배

우리 주님의 은혜와 평안이 함께하시기를 바랍니다.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죽은 것은 매우 충격적인 일이었습니다. 부활한 주님을 목격했다는 막달라 마리아의 말도 제자들을 납득시킬 수 없었습니다. ‘빈 무덤’은 제자들에게 부활의 표적이 아니라, 실망과 두려움의 원인이었고, 그 때문에 제자들은 문을 잠그고 모여 있었습니다. 우리는 요즘 C-19 팬데믹으로 인해 ‘락다운’이나 ‘도시 봉쇄’ 같은 단어들을 익숙하게 듣습니다. 부활절 둘째 주일을 맞아, 사도 요한은 바이러스로 인해 지금까지 경험해 보지 못한 충격과 상처와 아픔을 겪고 있는 우리에게 어떤 메시지를 전하고 있습니까? 부활이 있던 날 저녁에 집 안에 있던 제자들 사이에 예수께서 나타나 말씀하셨습니다;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20:19). 그리고 제자들에게 손의 못자국과 허리의 구멍난 상처를 보여주었습니다. 그들이 본 것은 너무나 충격적이었습니다. 특히, 베드로는 그 상처들 위로 자신이 배신했던 기억이 고통스럽게 번져가는 것을 느꼈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베드로의 마음을 어루만지실 것입니다(18:15-18, 25-27; 21:15-19). 예수님이 하신 예언했던 대로, 그들의 고통과 슬픔은 “그들이 주님을 볼 것”이기 때문에, 기쁨으로 변할 것입니다(20:20; 16:20-24). 예수님은 여드레가 지나서 집 안에 있는 제자들에게 다시 찾아오셔서 말씀하셨습니다: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20:26). 두려움에 빠져 있던 사람들에게 예수께서 전한 평화는 그들이 밖으로 나갈 수 있게 해주었습니다. 하나님이 예수님을 보내셨듯이, 예수님도 성령을 약속하시면서 그들을 세상으로 보내셨습니다.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고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14:26-27).

부활의 주님을 예배하는 자리에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예배는 주일 아침 11시에 시작되며, 대면예배를 희망하시는 분은 매주 금요일까지 참석의사를 알려주셔야 합니다(church@fpckorean.org). 비대면예배는 교회 YouTube 채널(Media SFKPC)을 통해 실시간으로 방송됩니다(Live Stream).

주님 안에서, 사바나제일장로교회

2021-04-04 부활절 예배

우리 주님의 이름으로 문안합니다.

오늘 우리는 지난했던 사순의 시기를 다 보내고, 예수님 부활의 시간을 함께 맞이하고 있습니다. 죽음을 넘어서는 새로운 생명의 현장이 오늘 아침 우리가 서 있는 자리입니다. ‘죽음을 넘어서는 새로운 생명’이란, 인간이 육체적 생존의 차원을 넘어 영원하고 참되고 복된 생명의 차원 즉 하나님의 생명에 참여하는 것을 뜻합니다. 

오늘 부활하신 예수님께서는 죽음을 죽음으로 방치하지 않으시고, 죽음과 소멸을 빚어서 새로운 생명의 신비를 창조하시고, 끝이라는 시간에서 영원이라는 초월을 창조하셨습니다. 우리 인간은 모든 것을 편협한 ‘시간의 눈’으로 나누어 보지만, 영원하신 하나님 앞에서 인간과 사물은 영원한 생성과 변화만이 있을 뿐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당신의 부활을 통해 죽음은 ‘죽음’ 즉 ‘시간의 끝’이 아니라 초월과 영원이라는 생명의 신비임을 보여주셨습니다. 바로, ‘예수님의 부활’ 입니다. 

그래서 교회는, 이렇게 생명의 신비가 만개한 부활절부터 앞으로 50일간을 매일매일 동일한 부활절로 보내게 됩니다. 즉, 그리스도의 부활로 인해 마침내 죽음이 정복되고 죽음에서 생명으로 넘어서게 된 이 날을 시작으로 매일매일 큰 기쁨의 축제일을 갖는다는 것입니다. 매일매일 부활하신 주님께 찬양과 감사를 드리며, 주님의 임재와 주시는 즐거움과 평화가 가득한 나날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부활의 주님을 예배하는 자리에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오셔서 함께 감사와 경배의 시간을 가질 수 있기를 바랍니다. 주일 아침 11시에 대면과 비대면으로 예배가 있습니다. 특별히, 내일은 아침 6시 30분에 부활절 새벽예배(Easter Sunrise Service)가 있습니다. 부활의 새벽을 예배의 마음으로 맞기를 희망하시는 분은 성경찬송가와 손전등을 들고 교회 마당에서 만나겠습니다.

주님 안에서, 사바나제일장로교회

2021-03-28 종려주일 예배

우리 주님의 이름으로 문안합니다.

오늘 우리는 주님의 수난을 떨리는 마음으로 예감하는 ‘종려주일’을 맞이했습니다. 그동안 우리가 걸어온 사순절 여정이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적 죽음이라는 정점을 향해 올라가는 길이었다면, 그 여정 속에서 오늘 맞이한 종려주일은 그 정상 가까이에서 맞닥뜨린 가파른 지점의 시작이라 하겠습니다. 이 가파른 지점을 전통적으로 교회는 ‘고난주간’이라 부르는데, 이 고난주간은 ‘영적 여정 속에 있는 또 다른 여정’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다함께 ‘부활의 아침’까지 지치지 말고 나아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고난주간이 시작되는 종려주일 아침에 우리 주님을 예배하는 자리로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함께 예배하면서, 주님의 고난을 기억하고, 그 고난을 이기고 나아가신 부활의 영광을 함께 고대하는 자리가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시간은 아침 11시입니다.

주님 안에서, 사바나제일장로교회

덧) 대면예배 참석을 희망하시는 분은 매주 금요일까지 알려주세요(church@fpckorean.org). 비대면으로 예배에 참여하기를 원하시는 분은 YouTube Live 로 참여하시면 됩니다.

2021-03-21 사순절 다섯째 주일예배

우리 주님의 은혜와 평안이 함께하시기를 바랍니다.

사순절 다섯째 주일입니다.

권정생 선생님의 작품인 『강아지 똥』은 1969년 『기독교교육』의 제1회 기독교 아동문학상 당선작이며 작자의 등단작입니다. 보슬보슬 봄비가 내리는 날, 강아지똥 앞에 파란 민들레 싹이 돋아났습니다. 강아지똥은 ‘하늘의 별’만큼 예쁜 꽃을 피우게 된다는 민들레가 부러워 한숨을 쉽니다. 그런데, 민들레가 말합니다. “그런데 한 가지 꼭 필요한 게 있어.. 네가 거름이 돼 줘야 한단다.” “네 몸뚱이를 고스란히 녹여 내 몸 속으로 들어와야 해. 그래야만 별처럼 고운 꽃이 핀단다.” 강아지똥은 얼마나 기뻤던지 민들레 싹을 힘껏 껴안아 버렸습니다. 시골의 어느 돌담 아래에 홀로 떨어진 강아지똥은 지나가는 참새나 흙조차 무시하는 하찮고 냄새나는 존재였습니다. 그런데, 봄비가 내리던 날, 강아지똥은 옆에 핀 민들레는 자신을 부러워하는 강아지똥에게 거름이 있어야 꽃을 피울 수 있다고 알려줍니다. 강아지똥은 생전 처음으로 들어보는 따뜻한 말과 세상 어디에도 쓸모없는 줄 알았던 자신이 새로운 생명을 꽃피우는 데 도움이 된다는 사실에 감격합니다. 강아지똥은 민들레의 바람대로 빗물을 기꺼이 받아 자신의 몸을 잘게 부수어 노란 민들레꽃을 피웁니다. 민들레꽃은 강아지똥의 눈물겨운 희생을 꽃 속에 담아 더욱 노랗게 피어납니다. 강아지똥은 민들레꽃을 피우기 위해 하나님이 자신을 만드셨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그리고 나중에 나비처럼 날아갈 민들레 씨앗 안에 자기가 영원히 살아있음 역시 깨닫게 됩니다. 민들레 씨앗 역시 자기 혼자만으로 꽃을 피우는 것이 아니라 다들 싫어하는 강아지 똥을 끌어안아야만 새로운 생명이 열린다는 사실을 열린 기쁨으로 받아들입니다.

십자가의 죽음을 향해 예루살렘으로 향하시던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요 12:24)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은 생명을 얻기 위해 죽음의 길을 가셨습니다. ‘세상의 지혜’로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하늘에 속한 진리’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만이 참된 길이요, 진리, 생명입니다.

예배의 자리로 나와 주님을 예배하는 복된 은혜를 누리시기를 바랍니다. 예배는 주일 아침 11시부터 대면과 비대면으로 진행됩니다. 대면 참석을 희망하시는 분은 매주 금요일까지 참석의사를 알려 주셔야 합니다. 비대면으로 참석하시는 분은 YouTube Live 를 이용하시면 됩니다 (Media SFKPC).

주님 안에서, 사바나제일장로교회

2021-03-14 사순절 넷째 주일예배

우리 주님의 은혜와 평안으로 문안합니다.

오늘은 사순절 넷째 주일입니다. 어느덧, 사순절도 중반으로 접어들었습니다. 전통적으로 서방교화는 이 주일을 ‘기뻐하라’ 주일이라고 불렀고, 성직자들은 이때 장미색 제의를 입었으며, 입당송은 ‘기뻐하라 예루살렘아’를 불렀습니다. ‘기뻐하라’ 주일이라고 부른 것은 부활절이 3주 앞 으로 다가왔기 때문입니다. 또한, 동방교회는 이 사순절 넷째 주일을 ‘성 요한 클리마쿠스(John Climacus) 기념주일’로 지킵니다. ‘사다리’라는 뜻의 ‘클리마쿠스(Climacus)’처럼, 다가오는 부활절을 향해 한 걸음씩 믿음과 경건의 사다리를 흔들림 없이 오르자는 격려의 의미가 담겨진 주일이라 하겠습니다. 이렇듯 고대로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교회의 주된 관심과 가르침의 핵심은 하나님께 나아가는 내적 생활 혹은 영적 생활의 진보였습니다. 오늘 우리 역시 다가온 부활절에 시선을 두고 영적 발걸음을 신실하게 걸어가야 하겠습니다. 그런데 이 영적 걸음을 걷는 여정에서 지긋지긋하리만치 신앙인을 괴롭히는 것이 내면에 똬리를 틀고 있는 ‘육적 본성(本能)’입니다. 이 본성은 온갖 사념(邪念)으로 마음을 흔드는가 하면, 우리 마음이 하나님을 온전하게 향하도록 내버려두지를 않습니다. 말씀과 기도로 더욱 경건생활에 정진해야 하겠습니다.

우리 주님을 예배하는 복된 자리에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이번 주일도 아침 11시부터 대면예배와 비대면예배가 함께 진행됩니다. 대면예배 참석을 희망하시는 분은 매주 금요일까지 의사를 알려 주셔야 하고, 예배 시 마스크 착용하셔야 하고, 입실하시면서 안내에 따라 ‘발열 체크’와 ‘손 소독’을 받으셔야 합니다. 비대면예배는 YouTube Live 로 참여하실 수 있습니다(교회이름, 또는 Media SFKPC 를 검색하시면 됩니다).

주님의 평안을 전합니다.

사바나제일장로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