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8-15 성령강림후 12주 예배

우리 주님의 은혜와 평안으로 문안합니다.

코로나 변이 바이러스의 전파속도가 상당히 매섭습니다. 연일 작년 못지 않은 확진자 증가추세가 걱정스럽기만 합니다. 언제까지 이럴까 하는 불확실 속에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가져야 할 분명한 삶의 자세는 “이 모든 상황을 하나님께서 분명히 섭리하신다”는 사실 입니다. 우리에게는 통제불능해 보이는 상황이지만, 이 혼란함 조차도 하나님의 분명하신 섭리 아래 있다고 확신 합니다. 그래서 이러한 때에 정말 중요한 것은 그 하나님에 대한 분명한 신뢰와 믿음을 갖는 것입니다.

우리는 오랜 시간, 1년 반 가까이, ‘비대면 예배’를 해왔습니다. 교회적으로 볼 때, 백신 접종이 대부분 이루어지고, 대면예배에 재게되었음에도 불구하여 여전히 많은 분들이 대면예배 참석에 상당한 부담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얼굴을 대하지 못하고 예배 드리지만,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하는 모든 곳에서 영광 받으시는 “하나님과는 대면하며” 예배를 드리고 있다는 것은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교회에서 함께 드리지 못하는 예배를 구분하기 위해서 ‘비대면 예배’라는 말을 사용하는 것이지, 사실 “모든 예배는 하나님의 얼굴을 뵙는, 대면예배입니다”.

복된 예배의 자리에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예배는 주일 아침 11시에 시작하며, 대면(예배실)과 비대면으로(YouTube Live: SFKPC) 참여하실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대제사장 아론을 통해서 주신 축복의 말씀처럼, “하나님께서 그 얼굴을 우리에게 비추사 은혜 베풀어 주시고, 평강 주시기를”(민 6:25-26) 간절히 소망합니다.

주님 안에서, 사바나제일장로교회

2020-08-08 성령강림후 11주 예배

우리 주님의 이름으로 문안합니다. 은혜와 평안이 함께하시기를 바랍니다.

‘양식’은 모든 생명이 생존을 위해 꼭 먹어야 합니다. 그래서 사람은 양식을 얻기 위하여 일을 합니다. 일과 노동을 통해 양식을 벌어들입니다. 광야생활 40년 동안에도, 내렸던 만나를 얻기 위해 수고를 하여야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수고해서 값비싼 양식을 먹었다고해서 영원히 배고픔이 사라지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이 일해서 소유하게 된 어떤 양식도 없어지게 마련이고, 또 그 양식을 위해 수고하는 사람도 결국에는 소멸하게 됩니다. 양식을 위해 일하는 사람도, 그가 벌어들인 양식도 없어지게 되니, 결국은 그 양식은 ‘썩을 양식’입니다(요 6:27). 그런데, 요한복음 6장을 보면, 사람이 일하여 얻는 양식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시는 양식’이 있다고 말씀합니다. 이 양식은 수고의 대가가 아니라, 사랑으로 주어집니다. 일꾼에게 주는 양식이 아니라, 자녀에게 주는 양식입니다. 대가 없이 은혜로 주어지는 양식은 ‘주는 이’와 ‘받는 이’ 사이를 생명의 관계로 이어주기에, ‘생명의 양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양식의 원천인 하나님은 영원하신 분이시기에, 이 양식은 중단없이 언제까지나 공급됩니다. 그런 의미에서, ‘영원하도록 있는 양식’ 입니다.

‘오병이어’의 기적을 체험한 이들이 “썩을 양식을 위하여 일하지 말고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을 위하여 하라”(27절)는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우리가 어떻게 하여야 하나님의 일을 하오리이까?” 묻습니다. ‘내가 무엇을 해야 영생을 얻을 수 있습니까?’라는 의미입니다(마 19:16, 막 10:17, 눅 10:25, 18:18). 여기서 ‘하나님의 일’이란 ‘하나님이 원하시는 일’이라는 의미인데, 그들은 하나님이 원하시는 일을 하겠다는 것입니다. 이런 열의에는, 내가 하나님이 원하시는 일을 행하여 그분을 기쁘시게 하면 하나님도 나의 원하는 것을 보상으로 주신다는 믿음을 바탕으로 합니다. 하나님의 일을 한 대가로 내가 원하는 양식을 얻겠다는 생각입니다. 하지만, 예수께서 하시는 말씀에서 ‘하나님의 일’은 ‘하나님이 하시는 일’입니다. 가족을 부양하는 일이 아버지의 일인 것처럼, 세상에 양식을 공급하는 것은 모든 생명의 아버지이신 하나님 자신의 고유한 일입니다. 아버지가 양식을 얻는 조건이나 대가를 자녀에게 요구하지 않는 것처럼, 하나님은 모든 생명에게 양식을 주시는 일을 성실하고 온전하게 행하십니다. 우리가 하나님이 원하시는 일을 해야 하나님으로부터 양식을 얻을 수 있다는 생각은, 아버지이신 하나님의 사랑과 온전하심을 신뢰하지 못함에 기인한 착오 입니다. 자녀인 우리가 할 일은, 하나님의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다만 아버지이신 하나님을 믿는 것입니다(29절).

사랑하는 여러분, 예배의 자리로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예배는 하나님의 양식인 말씀을 먹는 ‘성례전’입니다. 예배를 통해 하늘 양식으로 배부름(충만함)을 경험하시기를 바랍니다. 예배는 주일 아침 11시부터 대면과 비대면으로(YouTube Live: SFKPC) 진행됩니다. 그리고, 최근 코로나 확산으로 인해, 예배 시 ‘마크스 착용’을 필수로 하였습니다. 모두 은혜 중에 평안하시기를 바랍니다.

주님 안에서, 사바나제일장로교회

2021-08-01 성령강림후 10주 예배

우리 주님의 은혜와 평안으로 문안합니다.

8월 첫째 주일입니다. 인디언들은 이 8월을 ‘열매가 햇살을 저장하는 달’이라고 합니다. 여러분의 마음에 빛되신 그리스도를 한껏 저장하고 살아가시길 바랍니다.

사무엘하 11장을 보면, 밧세바 문제로 범죄한 다윗을 선지자 나단이 방문하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다윗을 찾아간 나단은 “주님께서 보시기에, 다윗이 한 이번 일은 아주 악하였다”(삼하 11:27)고 말합니다. 그리고 이어서 ‘저주의 예언’을 합니다. 그런데, 그 이야기를 듣고 다윗이 이렇게 자백합니다. “내가 주님께 죄를 지었습니다.” 다윗의 위대함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다윗의 인간적인 매력도 여기에서 발견합니다. 부족해서 언제든지 죄에 빠질 수 있는 한계를 가진 인간이지만, 죄인임을 깨달았을 때, 변명하거나 은폐하지 않고 회개하는 용기가 희망의 근거 입니다. 하나님께서 다윗을 붙잡아 주신 이유는 여기에 있습니다. 우리도 하나님께서 회복시켜 주시기를 원한다면, “죄를 깨닫고 주님께로 돌이켜야 합니다”. 죄의 지적과 깨달음이 있을 때, 얼마나 많은 이들이 과연 그 죄에 대해 인정하고 그에 대해 올바른 처신을 할까요? 죄를 회개하기는커녕 합리화하면서 살아가려고하는 것이 우리의 모습이 아닐까요? 한 가정이, 교회가, 나라가 변하려면 “내가 주님께 죄를 지었습니다!” 하고 회개하는 이들이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보십시오. 우리 사회와 교회가 ‘내가’가 아니라, ‘네가’ 라고 하고 있습니다. ‘내로남불’이라고 다 남의 탓입니다. 이런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교회의 지도자가 되면 그 교회는 불행해지고, 이런 사람들이 나라의 지도자가 되면 나라가 불행해지고, 세계의 지도자가 되면 세계가 불행해지는 것입니다. “내가 주님께 죄를 지었습니다!” 이런 마음을 가진 사람들이 많아져야, 교회도 나라도 세계도 희망이 있습니다. 죄의식에 빠져 살라는 이야기가 아니라, 죄를 인식해야 살아야 한다는 말입니다.

성령강림후 열째 주일 예배에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예배는 주일 아침 11시에 대면(예배실)과 비대면(YouTube Live: Media SFKPC)으로 동시에 진행 됩니다. 예배를 통해, 참된 회개와 그로 인한 복된 회복의 역사가 일어나기를 소망합니다.

주님 안에서, 사바나제일장로교회

2021-07-25 성령강림후 9주 예배

우리 주님의 은혜와 평안으로 문안합니다.

성령강림후 8주인 이번 주일에 살펴볼 말씀들 중에 ‘에베소서 3장’의 말씀이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무릎을 꿇고 하나님께 기도 합니다(14). 그 하나님은 “하늘과 땅에 있는 각 족속에게 이름을 붙여 주신 분(14,15)”이십니다. 이름을 붙여준다는 것은, ‘친밀한 관계를 맺는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곧, ‘이제 너와 나는 특별한 관계가 되었다’는 뜻입니다. 부모가 자녀의 이름을 지어주는데, 그 의미는 ‘장성한 어른이 되기까지 너를 책임지겠다’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창세기 2장 19-20절’을 보면, 하나님께서 아담이 창조하신 것에 무엇이라 이름을 붙여주는가 보십니다. 아담이 각 생물을 부르는 것이 이름이 되었습니다(창 2:19b). 이렇게 아담에게 이름을 붙이게 하심으로,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창조세계를 관리하고 지킬 청지기적인 사명을 그에게 주신 것입니다. 즉, 아담을 창조의 동역자로 삼아주신 것입니다. 이렇듯 이름을 붙이는 행위는 상당히 중요한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시인 김춘수 님도 <꽃>이라는 시에서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고 노래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그리스도인’이라는 이름을 붙여 주셨습니다. 왜, 하나님께서 이 이름을 붙여주셨을까요? 먼저, 우리와 친밀한 관계를 맺으시고, 우리와 특별한 관계가 되셔서, 우리를 책임져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이사야 43장 1절’에 “너는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고,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 하시는 말씀을 기억하십시오. 그러니,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겠습니까? 이름값을 하면서 살아야 합니다. 이름만 그리스도인이 아니라, 내가 그리스도인이기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욕되는 것이 아니라 빛나는 삶을 살아야 이름값하며 살아가는 것이 됩니다. 우리에게 ‘그리스도인’이라는 이름을 붙여주신 하나님 아버지를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살아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바라겠습니다.

여러분을 주일예배에 초대합니다. 예배시간은 주일 아침 11시며, 대면과 비대면(YouTube Live: SFKPC)으로 참여하실 수 있습니다. 이번 주일은 김철 목사 출타로, Army Chaplain 으로 사역 중인 이재우 목사가 예배를 인도합니다. 오셔서 큰 은혜 누리시기를 바랍니다.

주님 안에서, 사바나제일장로교회

2021-07-18 성령강림후 8주 예배

우리 주님의 은혜와 평안이 함께하시기를 바랍니다.

피아노를 조율하는 일에 있어서 세계적인 피아니스트들로 찬사를 받은 분이 계십니다. 60년 넘는 세월을 피아노 조율을 하신 서울 예술의전당 수석조율사이신 이종열 님입니다. 이 분이 <조율의 시간>이라는 제목의 에세이를 쓰셨습니다. 글 중에, “가지런히 놓인 흰 건반과 검은 건반 88개. 타악기인 피아노는 손가락으로 건반을 누르면, 해머가 현을 때려 소리를 낸다. 이 양모 해머를 미세하게 손질함에 따라 기계 장치인 피아노는 영혼이 담긴 소리를 내는 악기가 된다. 아무리 좋은 피아노라도 조율을 잘 하지 못하면 거칠고 둔한 소리를 낸다. 조율이란 아름다운 피아노 소리를 만들어가는 일. 아름다운 수리에 힘이 갖추어지면, 조율사가 감동하고 다음으로 연주자가 감동하고 끝으로 청중이 감동한다.”는 내용이 나옵니다. 조율은 ‘서로 타협하여 음을 결정하는 방법’ 입니다. 조율뿐만 아니라 연주도 타협이라고 할 수 있는데, 혼자만 큰소리를 지르면 음악의 균형이 깨지게 됩니다. 인생도, 신앙도 역시 마찬가지 입니다. 잘 조율된 피아노가 아름다운 소리를 내는 것처럼, 아름다운 인생이 되기 위해서도 ‘삶의 조율’이 필요합니다. 균형을 잃지 않은 배가 좌초되지 않고 오래 순항할 수 있는 것처럼, 복잡하고 분주한 현대인의 일상에서 필요한 균형감은 바로 ‘쉼'(휴식, 안식)을 어떻게 갖느냐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쉼’이란, 맹목적으로 몸의 긴장감을 푸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인간의 유한성을 인정하며, 하나님을 바라보기 위한 목적의, 하나님과의 소통을 위한 휴식이어야 합니다. 주님은 늘 우리의 필요를 아시고,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마 11:28) 말씀하십니다. 주님은 우리를 쉬게 해 주십니다. 주님의 보살핌 안에서의 쉼이 우리에게는 절실합니다. 주님의 품에 안겨서 우리의 지치고 상한 마음을 치유받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의 손으로 조율 받는 악기가 되어야, 자신의 삶은 물론 뭇사람들의 심금을 울리는 아름다운 삶이 될 수 있습니다.

성령강림후 8주 예배, 영혼에 참된 쉼(안식)이 있는 예배에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오셔서, 하나님의 손길로 조율을 받으시길 바랍니다. 60년 경력의 조율사가 아니라, 우리를 창조하신 분의 조율을 받아보세요. 왜 우리의 삶에 ‘아름다움’이 사라졌는데, 어떻게 그 아름다움이 회복되는 지를 경험해 보시기를 바랍니다. 예배는 약속된 주일 아침 11시에 시작될 것입니다. 대면과 비대면으로(YouTube Live: Media SFKPC) 만나겠습니다.

주님 안에서, 사바나제일장로교회

2021-07-11 성령강림후 7주 예배

우리 주님의 은혜와 평안으로 문안합니다.

오늘은 성령강림 후 7번째 주일입니다. 신앙이란, 일방적으로 내가 하나님을 믿다가 ‘Oh My God’이 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안에서 하나님을 믿게 됨으로 ‘Oh My Lord’가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참된 예배란, 일방적으로 드려지는 예배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받으시는 예배가 참된 예배입니다. 드리는 자와 받으시는 분 사이에 쌍방적(관계적)이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예배는 드리는 것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받으셔야 온전한 예배가 됩니다. 우리가 예배를 드려도 하나님이 받지 않으시면 아무런 소용이 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내가 예배를 드렸다’가 아니라, ‘하나님이 받으셨다’입니다. 예배의 핵심은 우리의 만족이 우선이 아니라, 하나님의 만족이 우선입니다. 예배의 초점은 오직 하나님이십니다.

주일 예배에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예배시간은 주일 아침 11시이고, 온라인 예배 참여는 YouTube Live 로 가능합니다(Media SFKPC). 참된 예배자의 마음으로 나아 오시기를 바랍니다.

주님 안에서, 사바나제일장로교회

2021-07-04 성령강림후 6주 예배

우리 주님의 은혜와 평안으로 문안합니다.

이번 주일은 7월의 첫째 주일입니다. 올해가 벌써 반이나 지나갔습니다. 한해의 반을 보내면서, 또 요즘 일어나는 일들을 바라보면서, 안타까운 마음이 듭니다. 코로나 팬데믹은 여전한데, 이상 기후로 곳곳에서 신음소리가 들리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재미있는 사실 하나는 한국교회는 이 날을 ‘맥추감사절’로 지킨다는 것입니다. 1월부터 6월까지, 상반기 동안에 있었던 하나님의 ‘에벤에셀의 은총’을 기리는 날을 갖는 것입니다. 구약성경의 맥추절과는 날짜가 일치하지는 않지만, 우리 신앙의 선배들은 맥추절의 정신을 잇기 위해서, 또한 신앙인의 제 1덕목이 ‘감사임’을 잊지 않기 위해서 맥추감사절을 지켰습니다. 맥추절의 유래는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해 주신 말씀입니다. “맥추절을 지키라 이는 네가 수고하여 밭에 뿌린 것의 첫 열매를 거둠이니라”(출 23:16). 곡식은 인간들의 수고도 필요하지만, 무엇보다도 하늘의 비와 햇살이 없이는 수확을 할 수가 없습니다. 광야에서 만나와 메추라기를 내려주신 것처럼, 하나님의 도우심 덕분에 우리는 먹거리를 얻을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맥추절을 지키라’는 말씀은, 하나님의 그 놀라우신 은혜를 잊지 말라는 요청입니다. 하나님은 이 말씀에 대한 구체적인 실천으로, 은혜로 얻은 것을 이웃과 은혜 중에(은혜롭게) 나눌 것을 말씀하십니다. 너희가 종이었던 시절, 나그네였던 시절을 기억하고 이 땅의 나그네를 돌보고 사랑하라고 말씀하십니다(출22:21, 23:9; 레19:34; 신10:19, 15:15, 23:7 등). 한 해의 반을 돌아보며 ‘감사’가 넘치시기를 바라고, 무엇보다도 사랑의 나눔이 넘치시기를 바랍니다.

이번 주일부터는 팬데믹 이전과 같은 예배를 재개합니다. CDC 가이드에 따라, 또 대부분의 교우들이 백신 주사를 맞았기 때문에, 가능한 결정이었습니다. 많은 교우들이 예배실에 모여 예배할 수 있기를 바래 봅니다. 그럼에도, 비대면으로 예배하실 수 있도록 유투브에 실시간으로 예배영상을 올려 놓도록 하겠습니다(YouTube Live: SFKPC). 은혜가 충만한 예배가 되도록 함께 기도해 주세요.

주님 안에서, 사바나제일장로교회

2021-06-27 성령강림후 5주 예배

우리 주님의 은혜와 평안으로 문안 합니다.

시인 조희선 님의 <하늘의 문>이라는 시 입니다.  

“막다른 골목길까지 걸어가 본 사람은 안다. 아무리 두드려도 끝내 열리지 않는 굳게 닫힌 문 앞에 서 본 사람은 안다. 사람의 마음이 얼마나 차가운지를

그러나 그 절망 앞에 돌아서지 못하고 기다려 본 사람은 안다. 사람 대신 하늘이 어떻게 손 내밀어 주는지를

 우리가 사는 것은 세상만이 아니다. 우리가 만나는 것은 사람만이 아니다.

 이 지상의 막다른 골목에 서면 하늘의 문이 있다.

 그래서 끝은 언제나 더 좋은 시작이 되는 것이다.”

성경에는 살아계신 하나님을 만난 사람들의 이야기가 많습니다. 특별히, 인생의 ‘막다른 골목길까지’ 걸어가 본 사람들의 이야기가 많습니다. ‘막다른 골목길’은 ‘극단의 선택’을 할 수 밖에 없는 곳일 것입니다. 동서남북 사방이 막힌 듯한 상황에서 우리가 가질 수 있는 유일한 희망은 ‘열린 하늘’일 것입니다. 대표적인 구원역사를 보여주는 ‘출애굽’ 상황을 봐도, 이스라엘 백성들은 앞에 놓인 바다와 뒤를 추격하는 애굽 군대 사이에서 절망의 경험을 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때 모세는 백성들을 향하여 “너희는 두려워하지 말고 가만히 서서 여호와께서 오늘 너희를 위하여 행하시는 구원을 보라. 너희가 오늘 본 애굽 사람을 영원히 다시 보지 아니하리라. 여호와께서 너희를 위하여 싸우시리니 너희는 가만히 있을지니라”(출 14:13-14)고 말합니다. 고난 중에 있는 이들에게, 하늘이 열리는 복된 체험이 있으시기를 바랍니다.

‘성령강림 후 5주’ 주일예배에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예배는 주일 아침 11시에 시작되며, 대면(예배당)과 비대면(YouTube Live: Media SFKPC)으로 참여하실 수 있습니다. 모두 나오셔서, 예배 중에 하늘 보좌에 앉아 계시는 우리 주님을 뵙는 은혜가 있기를 바랍니다.

주님 안에서, 사바나제일장로교회

덧) 다음 주일(7/4)부터 회중 좌석의 ‘거리 두기’는 하지 않습니다. 마스크 착용도 개인의 선택입니다.

2021-06-20 성령강림후 4주 예배

우리 주님의 은혜와 평안으로 문안합니다.

다윗이 사무엘을 통해서, 사울을 대신할 이스라엘의 왕으로써 강조된 말씀은 “하나님은 중심을 보신다”는 것이었습니다. 중심을 보시는 하나님의 선택으로 이스라엘의 새 왕이 된 다윗이 골리앗과의 싸움을 통해 ‘그의 중심’을 검증받게 됩니다. 다윗의 중심에는 하나님이 계셨고 하나님을 향한 믿음이 있었습니다. 따라서, 그가 골리앗을 이긴 것은 물매가 아니었습니다. 그는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삼상 17:45)으로 골리앗을 이겼습니다. 시편 9편에서 다윗은 “여호와여 주의 이름을 아는 자는 주를 의지하오리니 이는 주를 찾는 자들을 버리지 아니하심이니이다”(10절)라고 고백적인 노래를 합니다. 다윗은 주의 이름을 아는 자로서 절체절명의 순간에 주를 의지했습니다. 이것은 그가 하나님은 주를 찾는 자를 버리지 않는 분이심을 분명히 알았기 때문입니다. 결국 승리하는 자는 하나님을 그 마음 중심에서 간절히 찾는 자는 ‘예배자’입니다.

여전히 팬데믹의 어려움이 있지만, 저희 교회는 7월 첫째 주일(7/4)부터 CDC 가이드에 따라 ‘거리두기’ 제한이 없는 예배를 하려고 합니다(마스크 착용도 선택입니다). ‘모이기를 힘쓰는’ 것이 신앙인의 기본 자세입니다(히 10:25). 안전하게 모일 수 있도록 백신을 꼭 맞으시고, 예배의 자리로 나오실 것을 권합니다. 예배 시간은 주일 아침 11시입니다. 비대면으로 예배에 참여하길 원하시는 분은 YouTube Live 를 이용하시면 됩니다(Media SFKPC).

주님 안에서, 사바나제일장로교회

2021-06-13 성령강림후 3주 예배

우리 주님의 은혜와 평안으로 문안 합니다.

다윗은 ‘이스라엘의 왕’ 하면 떠오르는 인물입니다. 다윗을 빼놓고 이스라엘 역사를 논할 수는 없을 정도로 중요한 인물입니다. 그런데, 사무엘서를 보면, 다윗은 그저 ‘변두리의 인물’이었습니다. 첫 번째 왕이었던 ‘사울’이 돌이킬 수 없이 망가지자, 사무엘은 다음 왕을 찾기 위해 하나님의 안내를 받아 베들레헴에 사는 ‘이새’에게로 향합니다. 이새에게는 왕의 후보가 될 만한 여덟 아들이 있었지만, 다윗은 안중에도 없었습니다. 막내였기 때문입니다. 다윗은 식사에도 초대받지 못합니다. 그는 ‘밖’에 있습니다. 예상 밖이고, 계보 밖이며, 숫자 밖입니다. 하나님의 다스림이 그에게서 나타날 거라고 아무도 기대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밖을 상상하고, 실천하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이 때 하나님은 우리가 잘 아는 유명한 말씀을 하십니다. “외모를 보지 않고, 중심을 본다”는 말씀입니다(삼상 16:6-13). 요즘 방영하는 넷플릭스 드라마 중에 <로스쿨>이 있는데, 가장 많이 잡히는 장면이 재판의 여신인 ‘디케’의 동상입니다. ‘디케’는 눈을 가린채, 한 손에 저울을, 한 손에는 칼을 들고 있습니다. 디케가 눈을 가린 이유는 분명합니다. 재판을 굽게 하는 것들을 보지 않겠다는 뜻입니다. 눈은 편견이나 선입견을 만들기도 하니까요. 눈을 가린 디케는 재판해야 할 대상이 강한지 약한지, 권력을 가졌는지 없는지 등을 보지 않으려고 합니다. 판결을 굽게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지연이나 학연, 직업이나 출신 등이 힘이라면, 그 또한 외모입니다. 그거 보지 않고, 왼손에 든 저울로 정의의 무게를 재고, 오른손에 든 칼로 심판하겠다는 것입니다. 그게 외모를 보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외모를 보고 판단하는 육에 대한 나라가 아닙니다(고전15:50-58, 엡 6:12). 그래서 하나님 앞에 마음을 드리고, 중심을 드리는 일이 중요합니다.

우리의 예배가 온 몸과 마음과 뜻을 다하는 예배가 되기를 원합니다. 예배는 선포된 하나님의 영광과 그의 기이한 일들을 찬양하며 경배하는 시간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창조’와 그 분의 놀라운 ‘구원’에 대해 감사와 영광을 돌리는 순간입니다. 이 마음을 다하는 예배에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예배에는 대면과 비대면으로 참여하실 수 있습니다. 예배당으로 나오기 어려우신 분들은 온라인예배(YouTube Live: Media SFKPC)으로 참여하시면 됩니다. 시간은 주일 아침 11시입니다.

주님 안에서, 사바나제일장로교회